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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호의 중심 공간!/활동적인 기타등

국립현대미술관 과천30년 특별전: 김복진, 김만술의 사제지간 작품이 나란히 서있는 놀라운 우연!

성파가 알고있는 김복진과 김만술의 관계는 사사제자 관계이다.

(최근에서야 김용섭의 직속제자, 성파가 기억나는 데로 이를 두고 사사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달을 주제로 한 개관 기념 특별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30년 특별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2016.08.19 - 2017.02.12))에서는 한국미술을 망라하는 대규모 특별전이다.

전 국민이 한국미술계에서 거의 다 모르는 특별한 이슈로 부친과 내가 깜짝 놀라고야 만 관람을 하고야 만 대서 특필감인 즉
김복진의 미륵불과 수월의 해방이 서로 같이 붙어진 체 나란히 전시가되고 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조차 사제간인지 모른다고 이해한 그 기막힌 우연이란 깜짝 놀라게 하고 만 것이다.
이 기회에 김복진계 김만술 불교조각 이수자, 성파가 말하는 소조기법의 맥에 관해 소개하고자 한다.


김복진은 일본 도쿄 미술학교 조소과로, 불사로도 알려진 高村光雲 제자弟子(高村光雲는 高村東雲 도제徒弟로서 유명한佛師였다.)

김복진이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심정으로 보이는 불상조성의 맥락으로 해석될요인이 있다고 사료되는데, 혁신불인 미륵불을 착안하여 그뜻의 혁명을 순화하여 불교에서 참된 법열의 혁명을 본 것으로도 생각되고, 또한 김복진은 일본불교조각의 佛師스승들의 계보적 회귀처럼 조성하던 것(高村光雲선생의 불교조각에 대한 관심이 있었으나, 말엽에서야 조성활동을 크게 함)으로 생각되며 수월은 말엽의 제자(지금까지 남은 자료로는 사사로 보인)이다.

수월 선생은 서울미술학교(30-31)에서 한국최초 근대조각가 김복진 선생의 실습을 수료(김복진기초조실습 수료)한 뒤 직접 김복진의 문하에 들어가 사사 한 것으로 생각된다.

[수월은 김복진 사사라는 약력을 아들로서도 확인하지 못했으나, 자신에게서 가장 큰 조각으로 사이토 소원과 히나고 지츠조가 있던 구조사 수학을 비중을 두고 사이토소원을 자신의 조각스승으로 염두 하였기에 김복진 선생을 수료차원에서 약력에 올린지도 모른다.]+사이토 소원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로 회화부터 입문. 김복진에 비해먼저 입학했다.+


이미 김용섭의 직속제자, 성파는 차츰 기억이 떠올린데로 사사라고 본다.
서라벌문화회관의 계단옆의 유리속에 하얀 여래입상은 김복진선생<
불상습작1936

>께 배운 역량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였다.

성파의 헤라터치는 초창기에 흉상의 옷매무세 마무리로 수월선생을 따라하며 확인되는데, 누드나 인물 전체로 응용하기에 이른다.

이 전체적인 헤라 조형감각은 수월선생의 맥으로 기인한 것이고, 수월은 극사실류로 흉상을 만들던 때 대부분 세밀한 헤라로 눈이 안좋을 무렵에 몰두한 경주 문화인들을 기리는 흉상에서도 세밀한 쇠헤라를 볼수 있지만, 전반적인 흉상 작업의 대부분, 흉상의 옷매무세에서 얼굴에 쓰는 세밀한 쇠헤라보다 좀더 큰 헤라들의 마감처리가 흔히 보인다.
한국근대를 보는 눈 조소에 수록된 김복진의 작품 사진들의 실물대 석고 인물 등신대 작품을 보면, 헤라가 수없이 빼곡히 들여찬 마감처리를 옷과 치마에서 볼수 있다고 생각된다<
백화, 1938,윌리엄 선생상 석고,1937>. 김복진계 소조기법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선전의 조소부분은 김복진 선생이 장악하고 그의 제자들이 대부분 수상이력을 가지고 있음에서 김만술도 그에 해당되는 필적으로 근거적인 추론을 생각해 볼수 있다.

[성파 장용호가 복구한 과천관에 야외상설로 있던 역사 I, II는 수장고에 들어가서 볼수 없었다. 학예당당부서에 문의해야 추후일정을 알수 있다.]

두 조각스승의 정관 김복진계 수월 김만술 계보를 잇고 있는 성파 장용호의 한국 조각사에 길이 남을 사진 한장.

이는 수월이 지방에 칩거하며 작업을 하였기에 학예가들도 전 국민도 잘 모르지만, 그 우연을 주선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감사드린다.

현재 김복진계 수월 김만술의 불교조각을 계승한 사사제자는 주조장 '김용섭'이 유명하며, 성파는 부르델학파 사이토소원계 수월김만술의 현대조각 인체사실주의를 불교조각도 조금 병행하며 잇고 있다.
김용섭은 9년 사사 이후 다른 불교조각 스승과의 학업이 더 있었으나, 성파는 오로지 한 조각스승만으로 다른 학위나 학벌없이 오로지 수월 선생이 돌아가실때까지 사사로만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