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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호 조각의 세계/인체예술적 조형

장용호作 통일을 향한 과녁 (점토 누드,점토옷입힘,FRP 옷입힘 사진공계 08-528

누드 완성 사진 08년 5월 28일
옷 흙 완성사진 08년 5월 31일
FRP 완성사진  08년 6월 27일


통일을 향한 과녁이란 작품은 본래 중국의 손자기념공원 국제작가 몇명중에 허락되어 작품의 그 구상을 위한 소형작품을 보이며 심사기준에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설계본입니다.
이 작품은 단시간 내에 조형으로 석작업을 하기는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부속요소가 갖추고 있는 활이란 입장에서 그 합격점에서 멀어진 셈입니다.

중국 신화에서는 9이를 상징하는 과녁의 활의 신화적 통합의 모티브도 있으며, 중국 산동성 지역의 동이라는 그 입장과 교묘히 맞아 떨어진 경우입니다.
 또한 이러한 동이라는 입장은 우리나라에게도 흘러왔으나 엄연히 중국에서 말하는 동이는 중국의 동해안 택입니다.



장용호의 특기할만한 점이 있다면 대부분 발가벗은 누드에서 옷을 입히는 작업을 한다는 점입니다. 조소에 흉상실기를 많은 조소계 후학들이 연십하여 뭉게뜨리는 관례가 잦다면,
 장용호는 학원과 미대없이 수월선생의 길을 찾아 연고로 겪고, 자립한 대다수 시절 누드에 옷입혀 주는 관례에 빠졌고,

 조소계 후학들이 손으로 질감을 내는것이 대다수 흉상이라면,  장용호는 대다수가 헤라질 입니다.


미대생의 개인적인 흉상 습작이 모두 남아있으면 개인대 개인의 입장으론 거의 모두다 조각가 장용호의 흉상분량을 능가하고도 남았을 뿐만 아니라 추상작품겸 사실작품일 것입니다.
그러나 장용호가 습작아닌 습작에 옷 입히기전 누드작품을 모두 발가벗긴 것을 남긴다면 성파본인의 사실작품계의 현존하는 분량보다 분량이 더 많았을 것이고 전신상의 대가소리를 많이 들었을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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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8 첫번째
역시 FRP가기전의 원본은 작가적 역량이 넘칩니다, 허나 청동을 하기에는 돈이 곤란하고 테라코타를 살리자니 뼈대가 철로 안에 있어 굳어갈때 참담하게 나누어져 버렸으니 어쩌진 못했습니다.

 뭐 작가가 좀 궁핍하면 이것저것 놀리기?에는 어려울 뿐이죠. 작품도 온전히 살아남긴 어려우면서 그가치도 훗날 대대적으로 인정 받는다면 사라진 작품 저는 더욱더 애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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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컴퓨터를 빌려 색다르게 표현한 디지털 회화도 감상하시돼 특히 저의 작품은 켑처든 뭐로든 날름 퍼가시면 저작권에 걸림을 또 한번 걱정하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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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호는 소조 누드때에도 완벽을 가할때도 있고 좀 아닐때의 급할때도 있습니다. 이번사진에 보여주는 누드는 그 정확성이 몹시 뛰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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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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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이작품의 FRP누드는 매끄럽고 본연이 사라져서 차이가 너무도 나는 것이니 그 진면모가 사진으로 밖에 볼수밖에 없겠군요.
여기 이동식디스크 서는 찍어논 사진을 못 찾아서 근래엔 공개를 못하겠군요.
조소작품의 탈피된 소재는 거푸집중에 변형이 일어나는 의도와 불의도의 형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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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호의 작품을 개작할때 사진으로 나왔구려 넘 특이한 사진. 또하나의 사진인물^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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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컴퓨터를 빌려 색다르게 표현한 디지털 회화도 감상하시돼 특히 저의 작품은 켑처든 뭐로든 날름 퍼가시면 저작권에 걸림을 또 한번 걱정하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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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의 옷 매무세가 꾀나 유러하면서 역동적 입니다. 거친먼모의 잦은 헤라보다 훨씬더 보편적이면서 조형적인 실기스런 면모의 느낌도 다분히 듭니다.
그와는 달리 상체는 옷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경직되어 활을 쥐는 자의 그 확고한 의지성을 드러냅니다.
장용호는 으레 흙에서 가금이나 동분을 발라 돋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수월선생은 석고에 동분에 청동스런 느낌으로 자주 발랐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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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어쩌면 재창작의 완성이고 하다못해 낙서도 본인은 그것도 작품의 과정이라고 매스컴에서 밝혀본 적이 있듯이, 완전한 복제의 미학이 아닌 초등학교의 실습처럼 석고의 값싼 거푸집으로 작업했습니다.
 그레서 비록 원본은 떠올리기 어려우나 또하나의 거칠고 이음세가 있는 입체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성파는 이 작품의 화살이 곧 남을 쏘아서 나를 막는 방어가 아닌 남이 오는 배격을 붙잡거나 향방을 공격이 가장 공격으로서 지켜내는 또 다른 예술인체조형의 방식으로 수월이 해방이란 주제를 삼고 인체의 비율과 극적인 요동을 담았다면 장용호는 주제에 앞서 그의미를 느끼게 하고자 의도를 그 화살로 주었습니다.


자의적인 아들의 해설로서는 화살이 역행함을 좀 불편하게 생각하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쏠지 적정되는 북의 미사일을 붇잡는 것은 이 한반도의 여러 인명의 최선의 기회로서 필수 불가결의 입장임을 다시금 상기 시키게 합니다.

과연 남을 쏘지 않는다는 것으로만은 방어의 작전이라고 함에서 도리어 자신에 날카로운 화살촉을 어루만지는 남한의 세태인지 걱정되는 모호함이 드는 의심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