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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호의 중심 공간!/다양한그의 인연

로댕사사 브루델제자 사이토소원사사 수월김만술(김복진 제자)사사 장용호, 김번 & 제자 이동호

로뎅을 수년간 사사한 브루델, 사이토소원(渡欧しロンドンで彫刻を学ぶ。유럽 방문하고 런던에서 조각을 배운다.)은 사사 라기 보다 고모리 쿠니오가 배웠다나, 수월 김만술의 증언처럼 제자(학제과정 교수제자 명확히 나오면서 다시 프랑스의 아틀리에에 들려서 배웟다는 때가 물증이 나오면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 처럼 사사)로 현재 유력하다.

수월은 불교조각 문하생 김용섭의 직속제자라는 증언으로 하면 사사한 것이라 볼수 있지만 김복진과 서울미술학교와 연계성이 더 크다고 밝혀지면 수료적 제자이다. 수료이후 김복진 아래에 있었다면 사사라고도 볼수 있다.


수월은 사이토 소원을 김복진보다 더 높이 보았을거란 느낌은 거의 분명하다. 그래서 김복진의 제자라고 칭호를 드려야 할 것이다.

 사이토 소원을 사사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나,

행적으로의 반전으로는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일까?

(권진규 발언:"시미즈 다카시 선생 아래서 8년 동안 수학" 학교제자 이후에도 직속적인 연계점 때문에 사사로 볼수 있다./ 수월 선생도 히나코 지츠조 조각연구소 수학(3년간)=사사(왜 사이토 소원을 사사한 내력을 비밀에 부친듯 하면서 성파한테 특별히 언급한 것인지는 미상)가 된다.)


수월 그는 분명 현대조각을 더욱 흠모한 브루델의 계보로서 힘있는 '해방'이라는 전신상에 인체비례가 다리가 더 길고(성파도 인체비례에서 다리가 더 길다고 낮춰서 생각했는데, 브루델의 건설적 인체를 구현하고자 하였음인지는 고인밖에 알 사람이 있겠는가?) 근육이 과장된 브루델의 풍미가 나타나는데 이로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그의 조각 스승들이다.

서울로 상경하여 조각으로 먹고살길이 있길 바라는 김만술에게서 이미 김경승은 해방 이후 국내에서 너무도 확고하게 인체사실의 일감과 전신상들을 거머 쥔 것이다. 김경승의 일 맥아더장군동상도 수월 선생이 같이 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김경승이 인정한 경상도의 수재가 아닌가?

 수월 그는 불교조각&전통적인 조각양식을 1954김번초기(이동호의 석굴암 거푸집 등)와 1975장용호 무렵

(장용호 10년간 사사시기 中 

브루델 계보 인체사실주의: 흉상, 여체(경북대학교 비천군상 누드부터 옷주름 작업&여체 소품)

불교조각: 불국사 사천왕상&불상작업 참여

전통조각: 76年 경주 김유신장군동상(2차 원형보수 청동주조)수월을 사사한 장용호는 마구류, 장신구에 빈약한 부분등 석고 재보수하여 2차 제작 동참)

에 많이 다루었다. 오죽하면 김번선생을 장용호나 이동호씨가 공예가라고 불렀는가 사사영향이 큰 것인지 싶다.

내가 생각하는 사사는 1년이나 수년의 기간으로 스승에게 직접적으로 제자로서 도제를 겪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동호 선생은 사사라기 보다 제자에 속하신 듯 하며, 또한 김용섭씨의 진술과 성파의 견해(오래 상주하며 사사로서 이어진 쟁쟁한 제자들)가 비슷하여 브루델 계보라고 할수는 없을듯 하다.


성파가 들어오기 직전에 먼저 들어온 제자들이 브루델의 힘찬 남자인체를 구사하여 큰 계보를 이를 것이라 보았겠지 만, 결국 수월선생의 성파를 수년간 지켜보고 나는 브루델 제자에게서 배웟다고 세간이 놀랄만큼의 빗장이 결국 15년도 말엽 최근에서야 국내에서 재조명의 기회를 두고 있으니, 묘할 뿐이다.


성파 장용호는 내가 인정하는 내 제자(사사)가 되겠다는 암시데로 였는가?

 결국 사사생들이 불교조각과,

 김번 선생의 한국 조각가들의 소품조형물의 반추상으로서 눈을 돌리면서, 

남들이 한철로 생각하는 권진규가 염원하던 사실주의를 도외시하는 풍조속에서도 한국조소의 미래를 념단한 듯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지나치지 못한 듯 풀뿌리가 여기 재야조각가 장용호로 남아있다는 것에 한국 근현대미술사 조소의 비장이 아닐 수 없다.

권진규가 염원하던 사실주의는 결국 한국조소계의 승리자로 남았다. 결국 브루델 계보의 소조 인체사실주의는 아직도 한국에 남아있지 않은가? 수월 김만술 그는1949.11.26경향신문 2면國展風景(국전풍경) 彫刻室素描(조각실소묘)金萬述氏(김만술씨)「首(수)」는工夫(공부)를 몸더해야겠고, 며 혹평을 감수하던 그가 15년도 말에서야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뒤흔드는 그 누구도 거의 알지 못하던 거의 성파 아들의 국내최초공개적인 수월김만술의 브루델 계보 전율로서 말이다.


그 최후의 보루가 로댕으로부터 시작하는 권진규와 수월김만술의 소조 인체사실 조각 스승들의 계보는 내글을 쭉 읽어본 이상 현재 한국 대학 어디에도 없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일본은 브루델 학파로서 소조 인체사실을 사이토소원 사사 코모리 쿠니오小森邦夫->Jiro Hiruta蛭田二郎가 계승하고 있다.)

성파 장용호로서  이어갈 기회가 성파가 타계하기 전에 사사받을 각오로서 비록 사사까진 아니더라도 제자나 후학들이 상속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