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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인생의 삶이란?/조각가적인 사고.

조각가 장용호의 주의: 인체 사실주의 & 기법, 사조: 소조 헤라 드로잉

수월 김만술과 성파 장용호의 작품 수법(手法)에 관한 전승 비화


조각가 장용호는 운반 거리 상 2번 출품에 그치고, 돈이 별로 없어 테라코타 나부를 2번을 출품한 바람에 특기한 반응이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이로서 성파 장용호의 작품이 없다.


하지만 사람 키의 두 배에 가까운, 성파의 손맛(&헤라)이 조금 담긴 초대형 작품 두개가 여기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걸 알면 누구라도 놀라워하지 않을까?

[역사(力士),]

바로 성파 장용호가 수월 선생의 작품을 복구한 것이다.(원형은 경주에 있다. 보수를 다시 거쳐야 할 계획이 늦어지는 것이 아쉽다.)

성파 장용호는 로댕의 손맛(&헤라)이 이어지는, 조각가 계보를 수월 선생의 學究力 덕에 잇게 된 작가로서,

 

주의는 인체 사실주의, 구상, 극 사실주의

기법, 사조는 소조 헤라 드로잉

 

수월 김만술자신은 소조가라고 지칭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수월 김만술은 작품과 소품에서 인체의 흉상과 인체나 여체를 흙이나 석고를 헤라로 깎아내어 완성시키는 수법도 즐겨했고, 특히 추가적으로 입으로 석고를 머금고 분무(성파 증언)하여 표면에 입히니 돌 느낌 혹은 피부처럼 마감작업으로 덧칠하는 수법을 즐겨 썼다.


그의 유작원화(성파 소장), 胸像(일부 성파소장)을 보면 석고조각에 껍질이 있고, 그 껍질이 벗겨지면 고유의 헤라터치기법이 나온 특이한 수법을 더러 볼 수 있는데, 이는 누구나 석고 원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작석고에 왜 껍데기가 일어나 있을까? 이는 석고를 헤라로 조각한 뒤, 돌처럼 혹은 피부처럼 마감 미장하는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월 선생은 소조를 석고를 헤라로 마감 짓는 수법도 자신의 작품과 흉상에서 늘 해오셨다.


오늘날 소조로서 작품의 표면처리 전체를 붙이는 것보다 마무리를 조각하듯 깎아가며, 흉상을 비롯해 누드 전신상이나, 여체 표면의 전체적인 헤라 처리를 성파가 자주 구사하고 있는 것인데, 근대미술에서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은 수법이다.


전 세계 초창기 인체구상의 현대 조각가들도 권진규씨도 보통 손 터치의 살붙임을 소조의 대갈로로 인식시켜 진흥해 나갔기 때문이다.



인체 사실 형상에 대한, 헤라 터치로서, 수월 선생의 영향이 전승 되 온 내력임을 처음 밝힌다. 문하생현재 성파 장용호가 마무리 단계에서도 수월 선생처럼 자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파 장용호는 소조에서 완성을 테라코타의 원형으로 가치를 둔다. 초기에 즐겨하던 석고에서도 원형에서 추가로 헤라를 잘하지 않고, 흙 원형에서 헤라마감 처리를 주로 하는 편이다

석고 분무 마감미장도 번거롭게 느낀 듯 잘하진 않는다.


채색은, 석고대신 FRP에서 가금분이나 동분을 자주하는데, 이는 수월 선생의 석고에다 가금이나 동분을 칠한 사레도 있기에 칠도 사사받은 영향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수월 선생과 성파의 헤라 터치는, 수월 선생은 몹시 가늘고 세밀한 공예처럼 섬세한 쇠 톱날처럼 헤라를 마감처리 하는데 쓰는 것으로 보이고, 소품과 흉상에서 나타난다.

성파는 이에 반해 원형 링, 삼각형 링에다 철사를 꼬아서 긁어내며 파내는데 활용을 많이 하는 헤라를 마무리에 마감작업으로 자주 쓴다.


과감한 헤라의 느낌을 주는 흉상과, 소품에 크기에 맞는 털같이 빗살같이 빽빽한 헤라로 마감한 여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헤라로 완전히 마감하는 근대시기 흉상이 한국에서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조각가 김경승의 작품은 얼굴에서 헤라를 자주쓰지 않았다. 수월선생이 손을 덴 탓인지 맥아더장군 동상은 얼굴에 헤라 자욱 마무리로 많이 보인다.)는데 여러 작가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곧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또 하나의 내력 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