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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명예의 그는?/책으로보는 평가.

2018年12月 시사뉴스타임 세계를 감동시킨 조각, 순수한 열정의 꽃을 피우다 (중기뉴스타임)http://www.sisanewstime.co.k http://www.sisanewst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85 더보기
인물문제연구소 인물저널 96년 1월 인물조각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진 "장용호의 고독한 작업" 더보기
대구 조각의 형성과 대구 지역 조각가 5인의 작품세계:서울 대구정착한 주경39年입선, 경주出 김만술 언급 부분 대구 조각의 형성과 대구 지역 조각가 5인의 작품세계저자이은희형태사항iv, 117 o. ; : 삽도(일부채색) ; 26 cm. 일반주기국·영문초록수록 지도교수: 김이순 참고문헌(p. 104-110) 수록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 예술기획전공 2014. 8 [도판1] 김만술,,청동,70x30x30cm,1947년 대구 서양화에 비해 대구의 조각은 역사가 무척이나 짧다.1960년 이전의 대구에는 조각가는 물론 배움의 장소 또한 없는 상황에서 조각은 대중들에게 인식조차 없었던 시기였다.9)1950년대까지의 대구 조소계의 활동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지만 서울 출생으로 대구에 정착한 서양화가 주경(1909〜1979,제국미술학교를 졸업)이 조선미전에 (1939), (1940)로 입선.. 더보기
"서울의 YMCA 미술과"수월의 서울미술학교와, 김복진수료 연관성 탐론을 위한 자료 https://rinks.aks.ac.kr/Portal/ContentsView?sCode=ENCYKOREA&sId=E00515291925년의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한 자각상(自刻像)인 <3년 전>과 다른 입선작 <나체 습작>이 사회적으로 처음 공개 접촉된 한인 조각가의 신미술 조각 작품이었다. 이듬해부터는 서울에서 그의 지도를 받은 양희문(梁熙文)과 장기남(張基男) 등의 습작들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기 시작하면서 민족 사회에 근대적인 조각계가 형성되어 갔다. 김복진 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일제의 식민지 상황이던 한반도에 진출하여 정착해 있던 소수의 일본인 조각가들의 조선미술전람회 참가 등의 활동이 선행되었고 조각 학도들도 있었다. 김복진은 미술학교를 졸업한 직후 서울의 YMCA에 신설되었던 미술과에 나.. 더보기
대구 현대조소의 전개와 특성: 대구에서 수월 김만술선생이 최초의 조소개인전 한국인에 의한 현대조소의 도입은 1925년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선구자 김복진(1901-1940)과 그의 후배 김두일, 문석오, 김경승, 윤승욱, 김종영, 윤효중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시기 이들은 주로 조선미전을 통해 두상, 흉상, 입상, 좌상 등 사실주의에 입각한 구성계열의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양식적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조각의 미를 수용하면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조각가 로댕과 부르델의 조형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대구 조소계의 활동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경주에서 활동하던 김만술의 국전출품과, 1957년 5월 불상조각과 인체 소조 작품으로 대구에서 역사적인 최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더보기
시사뉴스타임 5월호 "1천여 점 작품 완성한 인체사실주의 대한명인, ‘성파 장용호’ "윤영수 기자 시사뉴스타임 5월호 94쪽 (성파 감수, 아들 송고(부르델 제자 증언의 첫 진술을 13년도 아들에게 하였고, 16년도에 일본예술원 웹자료와 함께 웹과 언론에 국내 첫 공개했다.) 조각 인생 외길, 후손에 예술세계 전승하겠다!1천여 점 작품 완성한 인체사실주의 대한명인, ‘성파 장용호’윤영수 기자 경주조각연구원(慶州彫刻硏究院) 조각가 성파(城坡) 장용호는 인체사실주의 작가로, 흉상과 인물 소조상 계열에서는 비공식 한국 최다(1천여 점) 작품 제작으로 알려진 명인이다. 흉상과 함께 누드, 종교미술에도 기여한 바 크다. 그는 수월 김만술(水月 金萬述)의 사사를 받은 자칭 ‘재야 조각가’다. 수월 선생은 사이토 소원(Sogan Saito 斎藤素巌 1889~1974)과 히나고 지츠조(日名子實三 아사쿠라 후미오 朝.. 더보기
김만술이 비유학파라는 오류를 범한 논문"김종영과 서울대학교" [김정락] 해방된 한국의 조각계는 열악한 환경과 인적자원으로 인해 참담한 지경 이었다. 이경성이 이것에 대해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10 당시 대부분의 조각 가들은 일본에서 유학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동경미술학교 출신들이 주류를 이 루었는데, 1925년에 졸업을 한 김복진을 필두로 하여 윤효중과 박승구 등이 있 었고, 김종영도 이 부류에 속했다. 11(도판2) 초기 미술대학교육을 형성했던 시 기에 김종영은 장발과 더불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발은 일본의 전문학교적 미술교육보다는 미국의 미술대학에 준하는 학제와 교과과정을 도입하였다. 김종영은 스스로 일본 유학을 통해 체험했던 일본의 관학적인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장발과 함께 보다 현대적인 대학미술교 육을 준비하고 수행했었다. 9.. 더보기
브루델 제자의 제자 수월 김만술 '해방' 근현대문화유산지정 박탈된 이유中 지명도가 낮다? 사실성은 중국이 경제주도권을 휩쓸면서, 자기나라 계보의 미술시장을 한껏 높혀놓아 치바이스의 문인화는 피카소와 맞먹는 미술 창사자로 금전적으로 드높혀 놓았다. 복제도, 작품이 많은것도, 위작이 많은것도, 그의 명성에 결코 훼방놓지를 못했다. 피카소와 맡먹는 금전을 들여놓은 중국미술의 자존심으로 키웟거늘, 한국 근현대 미술계에서도 중국에서도 희유한 수월의 브루델 계보를 뒤늣게 알려 밝혀진 대서특필 중에서도, 미술학예가들이 전부터 수월 김만술 선생을 조명하지도 연구조차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은 근현대 미술사에서 자존심이 걸린것이 아닌가?(수월의 한국 근현대 조소미술의 순번 순수미술 7번째 작품 해방은, 석고원형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데, 근현대문화유산지정에서 보류됬다. 수월의 친구(어떤 학예가는 제자라고도 표현.. 더보기
아시아 유일한 세계전역 조소를 다루는magazine"雕塑杂志" 그리고 조각가 장용호, 중국內다루는 중국조소협회 "中国雕塑" 아시아 유일의 세계조소 간행물“sculpture雕塑 杂志 42회차 04/04 소개(허文集 한국계藝術人 中國국전대상) 한국 생존작가로서 한 페이지는 최초(그 당시 중국조소협회에서 작가 내공이 인정된 것으로 알려져, 100% 무보수로 실림 몇부정도 찍었을까? 후덜덜)라는 식의 말도 그 당시 들어 본 것 같은 데 사실인지 아닌지 좀 다 펼쳐 봐주실 분 없는지? 雕塑在线http://www.diaosunet.com/중국은 월간으로 조소를 소개하는 잡지(magazine)가 2종류가 있다. 세계 전체 조소를 다루는 메거진으로서 아시아에서 유일한 Sculpture雕塑杂志 조소 잡지, 중국內국가적으로 다루는 중국조소협회발행 中国雕塑가 있다아시아에서 유일(검색결과에서 아시아 유일이라 나와서 그렇게 알렸는데, 세계 전체를 .. 더보기
주간인물에 언론사 최초로 브루델 제자의 제자 수월김만술 공개, 성파의 취재글 첫 감수해서 올린글 오류수정본공개 김현정 / 기자 주간인물: 원문http://www.weeklypeople.co.kr/detail.php?number=2147 아들로서 한국 일본 근대미술사 공부를 수월 선생과 성파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 공부中, 주간인물의 기자가 공교롭게도 취재요청이 있어 수략하여 아들의 요구로 성파가 기사와 주요기제내용 약력사항을 처음으로 간추려 감수하다 미공개 내용은 페이스북에도 자주 올렸으나 차후 기회가 있길 바란다 이에 다시 한 번 잘못된 사항 및, 페이지 부족으로 삭제된X, 꼭 필요한 내용()을 살렸고, 문장정리를 한번 더 고쳐서 완벽한 상태로 공개한다. 최종 수정인 아랫글의 원래글은, 주간인물no.977 2016.2.24에 40페이지에있다.불꽃보다 뜨거운 조각가의 삶, 40여년의 조각 인생을 회고하다慶州彫刻硏究.. 더보기